박혁거세《문학청춘》 시망(詩網)에서 나온

한 편의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특정 시대의 현실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자아와 세계의 관계 양상은 작가가 처한 현실이나 대상에 반응하고 그로부터 일련의 행동을 하는, 이른바 인식과 태도의 문제와 관계된다.
동질화와 분리화는 자아가 인식한 대상과 유대감을 형성하거나 반대로 거리감을 두려는 것으로 자아가 세계에 대해 취하는 일정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단순히 외부 세계에 자신을 투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상을 통해 자신과 세계라는 존재에 대해 묻고 파헤치려는 행동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시는 자아와 자아를 둘러싼 사물이나 세계와의 관계에서 태어나 사물과 사물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서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다.
즉 시인은 별개처럼 보이는 하나의 사물을 고립된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철저히 주관화해서 선택한 사물과 결합한다.

이러한현실인식의한형태로서역사적풍경이나시대의아픔을시적소재로활용하여현재와융합시키는시작방법은최근현대시조의작품에서도찾아볼수있다.
이러한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세련된 감성을 만날 때 극적으로 형상화되며 서술성과 서정성이 결합된 탄탄한 구성을 가질 때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한다.
그것은 단순히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추나 트라우마에 대한 기록을 넘어 새로운 기억의 장소로서 의미공간을 확대하기도 한다.

백두산의 천둥소리가 그치려 할 때까지 천상의 거인 하나를 들고 올 때까지 아침이 밝지 않았다.
봉인된 겨울이었다

그 불씨가 물과 뭍을 파고들며 어둠의 배를 가르고 폭죽을 쏘아올린 날 별빛도 함께 끓어오른 첨성대가 뜨거웠다.

토함산 정상을 오르는 빛과 열기, 밤낮으로 수풀로 계림숲을 비추니 혁거세불의 후예가 태양제를 지내고 있다.

  • 임채성, ‘박혁고세의 불 – 월성원자력발전소 앞에서’ 전문 (<한국동서문학> 2021년 봄호)

월성원자력발전소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동해 기슭에 있는 국내 유일의 가압중수로형 원자력발전소이다.
천연우라늄을 핵연료로 이용하기 때문에 일찌감치 핵연료 국산화가 추진돼 1988년부터 연간 100t의 핵연료를 전량 국산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화자는 왜 이런 월성원자로 앞에서 박혁거세의 불을 떠올리는 것일까. 박혁거세라는 이름은 한자 표기를 현대어로 소리만 따서 읽은 것이다.
신라에서는 한자를 지금처럼 읽지 않고 음독과 훈독을 섞어 읽었다.
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를 불구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혁거세’의 한자 ‘혁’과 ‘누리세’는 뜻이 각각 있어 순우리말 ‘붉은누리’, 신라의 발음은 ‘부르그누리’, ‘부르그누리’ 등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첫손부터 불을 가져온 천상의 거인 하나는 당시의 선진 기술인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다.
세 번째 수의 ‘낮이 없는 풀숲으로 계림숲을 가득 메우고’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철기로 인해 농업과 군사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어 그가 오기 전까지 ‘아침은 밝지 않았다’고 ‘봉인된 겨울’이었을 것이다.
어둠의 배를 가르고 폭죽을 터뜨린 날을 떠올리는 상상력은 첨성대가 뜨거웠다는 표현에서 역사성과 융화를 통해 독자를 삼국시대로 이끌고 있다.
화자는 ‘백두산의 천둥소리’를 듣고 ‘토함산 꼭대기를 걷는 빛과 열기’를 본다.
박혁거세의 불과 월성원자력발전소는 혁거세의 불의 후예들이 태양제를 지내고 있다를 통해 연결된다.
이때 박혁거세의 이야기는 옥타비오파스에 따르면 영원한 현재인 시간이며 지금 이곳은 구체적으로 현재화되고 실현되는 시간이다.
원전을 보면서 현대와의 접점을 찾는 시인의 눈, 그 장면을 독자 앞에 생생하게 보여주는 표현을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다.
- 박성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