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선 제1발해왕조실록(46) 제15대

발해왕조실록(46) 제15대 대인 배 1

  • 마지막 왕의 자리와 거란의 침공
  • 발해의 제15대 군주 대인선은 발해의 마지막 왕입니다.
    그는 14대 대위의 아들로 추정되지만 기록상의 증명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그의 즉위 연도도 분명치 않지만, 첫 등장 연도인 906년을 즉위 연도로 추측하고 거란이 발해를 항복시킨 926년 1월 14일까지 20년간 발해를 다스린 군주였습니다.
  • 시호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시호는 ‘신라 제32대 효소왕 때 발해가 건국되고 신라 경애왕(55대) 때 거란에 공격당해 죽었다.
    ’는 동국사략의 한 구절을 한국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했던 일본 학자들이 ‘(발해가) 경왕과 애왕 때 거란에게 공격당해 멸망했다.
    ’는 동국사략의 한 구절을 한국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일본 학자들이 ‘(발해가) 경왕과 애왕 때 거란에게 잘못되어 멸망했다.
    정확하게는 신라 경애왕으로부터 앞서온 ‘경(景)’을 대현석으로, 뒤의 ‘애(哀)’를 대입하였다.
    한때 교과서에도 그 오류가 있었지만 지금은 제외되어 환단고기의 발해왕 계보에서 애제라는 큰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 13대 대현석과 15대 태인성 사이에서 빠진 왕 대해(14대)는 당시 유일하게 <당회요>라는 책에만 기록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군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듯이 발해의 역사는 거란(요)에 의해 철저히 말살되어 버린 것입니다.
    망국군주로서의 이름을 지어준 부모로서 그럴듯한 애자인 만큼, 더욱 인상이 강해, 때로는 아이를 대상으로 한 만화 한국사 등에서 아직도 「애왕」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인선은 나라의 마지막 군주였기 때문에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과 고구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보장왕처럼 시호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 그의 내치나 외치에 관한 기록도 전혀 없고, 그의 대에 걸친 기록은 거란의 침략에 관한 것뿐입니다.
    거란의 팽창에 두려움을 느낀 발해는 해족, 신라, 고려, 후량 등 여러 나라와 힘을 합쳐 거란을 견제하려 했으나 당시 한반도와 중국 모두 형편이 좋지 않아 해족은 거란에 병합되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해족은 북방민족의 동호에서 발원한 민족으로 선비우문부의 지파로 고막해 또는 고막해족이라고도 불렸습니다 후량(後梁, 907년 ~ 923년)은 5대 10국시대 5대 왕조로 당나라 말기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당나라 조정을 장악한 군벌 주전충이 907년 당나라의 마지막 왕이 된 제20대 ‘애제'(愛帝, 또는 소선제, 892~908년)부터 물려받아 건국된 나라입니다.
  • 924년 거란이 요동을 공격해 발해인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이에 대인선은 군사를 일으켜 요주 자사 장수실을 죽이고 포로를 되찾아 오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요동 전투는 발해에 마지막 승리였습니다.
    925년 12월 21일 요동전쟁에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거란이 대대적으로 공격하였고, 이 전쟁으로 발해는 최후를 맞게 됩니다.
    거란은 20년간 꼼짝도 하지 않았던 요동 방어선을 무시하고 우회함으로써 발해의 요충지인 부여부를 직격했습니다.
    부여부는 거란군에게 포위된 지 사흘 만인 926년 1월 3일 함락되었고 발해는 이에 맞서 노상. (늙은 재상)에게 군사 3만 명을 주어 진격을 저지시키려 하였으나, 이 결사대도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 부여부를 접수했던 거란은 단숨에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의 홀한성(도쿄성, 상경성)까지 진격해 926년 1월 9일 성을 포위했습니다.
    대인선은 백성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였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고려 등지로 달아나는 데 바빴습니다.
    결국 대인선은 상경 용천부를 포위한 지 나흘 만인 926년 1월 12일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926년 1월 14일, 대인선과 300여명의 신하들은 야율아보기(야율아보기, 요 태조) 발해는 15대 228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포위된 지 4일, 항복을 결정한 지 이틀 만의 일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노선을 우회한 독일군의 프랑스 점령처럼 발해는 어이없이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수도인 상경용천부는 거란군의 방화로 며칠 동안 불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 다음 회입니다.